베껴쓰기’로 힐링을?…문학 작품 ‘필사’에 중독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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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사로 사유와 힐링을
소설가 김훈의 작품을 필사한 박영선 씨(26·여)는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자판을 치는 속도는 말하는 속도와 비슷해 글을 써도 생각할 시간이 없다”며 “반면 손으로 한자씩 눌러 쓰려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고 그 틈에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고 말했다. ‘기적의 손편지’의 저자 윤성희 씨도 “손으로 쓰면 지우기 어렵기 때문에 한 번 더 고민하고 글씨를 쓰고 이 과정에서 생각하는 힘이 세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필사로 ‘힐링’이 됐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직을 준비 중인 이미향 씨(51·여)는 “필사 과정에서 그간의 삶을 차분히 정리하고 새 출발에 물두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백산맥문학관 위승환 명예관장은 “필사하다보면 문장의 이해를 넘어 행간에 담긴 이야기, 작가의 본질적인 가치관까지 절절히 느끼게 되고 자신의 삶도 반추하게 된다”고 밝혔다.
최근 문학작품 필사를 돕는 책 출간도 늘고 있다. 지난해 말 출간된 ‘고전의 필사’는 출판사 홈페이지에 다운로드 받은 원고지에 책 속 시조를 베끼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책을 펼쳤을 때 왼쪽 페이지에는 문학작품, 오른쪽 페이지에 빈 공간이 배치된 ‘나의 첫 필사노트’도 1월 말 출간됐다.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손으로 글씨를 쓰면서 읽으면 뇌가 더 활발해진다는 연구결과 덕분에 교육용으로 필사를 시키려는 부모들도 적지 않다. 박경리, 김훈 소설을 비롯해 ‘메밀꽃 필 무렵’(이효석), ‘날개’(이상) 등 근대문학이 필사하기 좋다는 평이다.
전문가들은 필사의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어깨가 결리고 눈, 손목이 아파지는 등 참맛을 아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7년 간 필사를 해온 서울 중화고 방승호 교장(54)은 “너무 잘 쓰려고 하면 그 자체가 스트레스”라며 “정말 쓰기 싫으면 그 감정을 실어 휘갈겨 써도 좋다. 그렇게라도 필사를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