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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돌파구 찾아 두 발로 세계일주… 17년간 걷고 있는 사나이 karl bushby

체러티샵 (ip:)
2015-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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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 1170
평점 : 0점

 




nationalgeographic 동영상

http://channel.nationalgeographic.com/videos/karl-bushby-a-life-of-extremes/

 

17년 동안 두 발로 걸어 전세계를 일주하고 있는 남성이 있다. 영국 공수특전단 출신 칼 부쉬비(46)다. 그는 군대를 제대한 다음해인 1998년 초에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는 교통수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두 발만을 이용해 세계를 걸어서 한 바퀴 돈다. 둘째는 첫째 목표를 성공하기 전까지는 고향인 영국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 부쉬비는 지도를 펼쳐 놓고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경로를 찾아 빨간색으로 줄을 그었다. 지도에는 남미 끝인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를 시작점으로 중남미의 파나마와 콜롬비아 사이에 있는 열대우림,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가교인 베링해협을 지나 이후 러시아와 몽골, 중동, 유럽 대륙을 잇따라 통과해 영국에 도착하는 경로가 그려졌다. 총 거리는 약 3만6,000마일(약 5만8,000㎞).

부쉬비는 1998년 11월1일에 첫 발걸음을 떼며 도전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17년이 지난 올해 러시아 시베리아를 횡단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속도로 걸을 경우 부쉬비는 앞으로 6년 후인 2021년에 영국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도전에 성공하면 역사상 처음으로 걸어서 지구를 한 바퀴 일주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그가 걷는 건 단지 기록 때문만은 아니다. 반 평생을 길 위에서 보낸 부쉬비의 행로를 짚으며 삶의 일면을 엿봤다.

일생의 반을 걷는데 보낸 남자, 부쉬비

부쉬비는 1998년 11월1일 칠레의 남쪽 끝 도시인 푼타 아레나스에서 긴 여행의 첫발을 뗐다. 길동무는 있었다. 생필품과 위성 전화기,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노트북 등이 실린 바퀴 두 개 달린 짐수레였다. 부쉬비는 ‘비스트’(beast, 야수)라고 이름을 부쳐 주었다. 그는 약 100파운드(약 45㎏) 정도 무게가 나가는 비스트를 끌고 북쪽을 향해 걸었다. 몇 주 만에 발톱이 깨졌고 속도는 더뎌졌다. 그래도 계속 걸었다. 낯선 이방인에게 관심을 갖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3년 후인 2001년에 남미와 북미를 잇는 가교이자 파나마 지역에 있는 열대 정글인 ‘다리엔 갭’(The Darien Gap)에 도착했다. 악어가 사는 늪지대가 함정처럼 도사렸고 빼곡히 솟은 나무로 대낮에도 어두웠다. 콜롬비아 무장혁명군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그는 현지인처럼 꺼멓게 분장을 하고 정글을 헤쳐 걸었다. 무장혁명군이 보일 때면 나무 아래에 숨거나 강물 속으로 피신했다. 정글을 지나 구사일생으로 니카라과에 도착하자 결국 짐수레가 부서졌다. 부쉬비는 수레를 새로 만들고 ‘비스트 2’라고 이름 지었다.

부쉬비는 북미 대륙으로 넘어온 뒤에는 서해안을 따라 걸었다. 멕시코 국경을 넘자 미국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모하비 사막을 건널 때는 지독한 고통이 엄습했다. 팔팔 끓는 듯한 모래와 섭씨 49가 넘어가는 고온은 한계를 시험했다. 가파른 절벽으로 둘러싸인 로키 산맥을 넘을 때에는 커다란 바위를 영원히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벌을 받은 시지프스 같았다. 짐수레를 허리에 메고 오르기를 계속했다.

부쉬비가 북미 대륙의 끝인 베링해협 근처에 도착한 것은 2006년 초였다. 걷기 시작한 지 약 8년만이었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는 애초에 계획했던 대로 알래스카와 시베리아를 잇는 베링해협을 걸어서 건너기로 했다. 바다 위에 어는 얼음 덩이를 밟고 가야 했다. 주위에서 만류했다. 목숨을 잃을 거라고 했다. 그는 2006년 3월 베링해협을 건너기 위한 최단코스를 택해 걸었다. 14일 일정이었다. 그 이상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컸다. 프랑스 모험전문가인 드미트리 키에퍼의 자문과 도움을 얻은 끝에 베링해협을 건너 러시아 땅을 두 발로 밟았다. 베링해협을 걸어 건넌 것은 부쉬비가 역사상 처음이었다. 그는 무사히 도착했다는 사실에 기뻤다.

뜻 밖의 장애, 러시아

부쉬비의 도전에 가장 큰 장애는 혹독한 기온도, 자신의 몸에서 끊임없이 피를 빨아대던 모기도, 혼자 걸을 때마다 엄습하던 지독한 외로움도 아니었다. 부쉬비가 베링해협과 맞닿은 시베리아 동단의 우엘렌 지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러시아 국경수비대에 체포됐다. 불법입국과 그의 군 전력이 드러나며 간첩으로 오인 받았다.

러시아 정부는 그를 석방하는 대신 약 90일간의 체류 비자만을 허가했다. 90일 후에는 외국으로 출국했다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야 비자가 재발급됐다. 걸을 수 있는 시간이 대폭 줄어들었다. 우엘렌 지역을 시작으로 유럽이 있는 서쪽을 향해 시베리아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총 620마일을 걸었고, 2008년에 들어서는 단 3주만 걸을 수 있었다. 시베리아는 겨울을 제외하고는 늪지대와 강으로 변해 길이 없어졌다. 그가 걸을 수 있는 계절은 겨울 뿐이었다. 2008년 말부터 2010년까지는 멕시코에서 보냈다. 비자 문제가 다시 얽히면서 러시아에서 추방당했다. 2009년 발생한 경제위기로 부쉬비의 여행 경비를 후원해주던 스포츠업체들이 지원을 끊으며 악재가 겹쳤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고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시절이었다.

부쉬비는 기다렸다. 별다른 방법은 없었다. 인내뿐이었다. 그는 어렵사리 2010년 새로운 스폰서를 구했고, 하늘의 뜻인지 운 좋게도 러시아 정부가 다음해인 2011년 봄에 그의 체류 비자를 허가했다. 90일 비자만기 조건은 여전히 똑같았다. 부쉬비는 2011년 동안 총 680 마일을 걸어 러시아 동부에 위치한 도시인 스레드네콜림스크에 도착했다. 여정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고향인 영국에 도착할 날짜는 한없이 미뤄졌다. 다만 걸을수록 영국은 조금씩 더 가까워졌다. 그는 2012년에도 총 560마일을 걸었다.

러시아 정부는 2013년 3월 부쉬비의 러시아 입국을 5년간 금지했다. 러시아 군부대 지역을 지나야 하는 그의 노선이 알려지며 서방세력의 간첩이라는 의심이 커졌다. 부쉬비가 1998년 시작했던 여정은 2013년 3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멈췄다. 도전을 시작한 지 15년 만이었고 그의 나이 44세였다. 지구의 딱 절반을 걸었다.

부쉬비, 그가 걷는 이유

부쉬비는 15살 때 병원에서 언어장애인 난독증 판정을 받았다. 그런 장애가 인생에 작은 동기를 부여했다고 그는 영국 BBC방송에 말했다. 16살이 되던 다음해에 그는 학업을 포기했다. 대신 영국 공수특전단에 지원했다. 엘리트 군인을 양성하는 곳이었다. 다섯 번이나 불합격 끝에 입대하는 데 성공했다. 영국 공수특전단의 상징인 붉은색 베레모를 쓰고 거울 앞에 서면 뿌듯했다. 가족과 국가를 위해 평생 헌신할 것을 다짐했다. 군복무를 하며 난독증을 앓는 군인은 진급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내와 헤어지는 시련도 겪었다. 그는 1997년까지 12년 동안 복무하고 제대를 선택했다.

처음 걷기 시작한 이유는 그랬다. 극한 상황에 자신을 몰아넣고 극복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 같았다.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다섯 살인 아들을 영국에 남겨두고 그는 도망치듯 1998년 출발점인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에 섰다. 그리고 걸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에게 물었다. “왜 걷는 겁니까.” 그는 처음에 난독증, 군인, 아들 같은 단어를 말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걸을 때는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고통스럽고 힘들 뿐이었다. 나무 밑이나 강가에서 쉴 때에야 걷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어 볼 수 있었다. 마음 속의 대답은 항상 달랐고 또 조금씩 변했다. 걷기 시작한지 4년 후인 2002년 미국 국경을 막 넘기 직전이었다. 한 행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또 다시 같은 질문을 던져다. 부쉬비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이유는 계속 진화한다. 한 가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중요한 건 내 도전을 완수하고 싶고 그 전에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가 2013년 부쉬비의 입국을 금지했을 때 그의 도전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당시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포기란 단어를 곱씹으며 말했다. “나는 걷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지금 도전을 포기하면 그 희생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돼 버린다.” 그는 지난 15년 동안 아들을 단 두 번 만났다. 부쉬비는 2013년 중순 미국으로 갔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시작해 워싱턴까지 약 3,000마일이 되는 길을 걸었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워싱턴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이었다. 대사관 문 앞에 도착하는 도전이 끝난 다음해인 2014년 러시아 정부는 부쉬비의 입국을 허가했다.

부쉬비가 걷는 이유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그의 말처럼 한 가지 이유가 아닌 여러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다만 마지막 목적지인 영국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분명 들을 수 있는 대답 한 가지는 불현듯 유추가 된다. 아마도 “도전을 완수하고 싶었다” 아닐까. 예정대로라면 부쉬비는 앞으로 6년 후인 2021년쯤 영국에 도착한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의 바다는 두 국가 사이에 연결된 해저터널을 따라 걸을 계획이다. 그때 그의 나이 52세다. 그는 현재 러시아 동부에 있는 야쿠티아공화국의 수도인 야쿠츠쿠를 지나고 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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